맹자에 보면 사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네 가지 단서란 뜻인 거 같은데 이 네 가지가 인간의 착한 본성을 이룬다는 말이다. 네 가지 인간의 본성은 익히 들어 본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측은지심이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양보하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인의예지로 본다면 여기서 양보하는 마음은 '예'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마음은 '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에 해당할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인간이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고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다. 이 덕목이 없다면 우리의 세상은 혼탁해지고 살만하지 못한 세상이 될 것이다.
- 양보하는 마음이 없다면 서로 새치기하고 사재기를 하고 지하철을 타려고 아우성을 치게 될 것이다.
-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치졸한 짓을 하고도 당당할 것이고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다.
-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마음이 없다면 의도는 좋은데 엉뚱하게 일하여 해를 끼치거나 회사나 나라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
- 그리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인간 사회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양보하지 않아 일어나는 교통사고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부끄러운 줄 몰라 남을 속이거나 강도 짓을 하고도 당당히 고개 드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을사오적 같은 인간들은 나라를 팔아먹고도 얼마나 당당히 살았는가?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해 우리나라는 얼마나 시련을 겪었으며 또 지금도 겪고 있는가?
불쌍히 여기지 않아 세상의 빈부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일터의 근로자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네 가지 덕목의 부활이 필요하다.
하기사 어느 시대엔들 이 네 덕목이 잘 발현된 시대가 있을까? 공, 맹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잘 되고 있었다면 맹자가 굳이 사단을 강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요즘 세상을 보니 이 네 덕목 중에서 특히 수오지심이 부족한 것 같다.
부끄러움이 없는 이웃 나라들이 있다. 부끄러움이 없는 정치인들이 있다. 부끄러움이 없는 이웃들이 있다.
양심이 없을 때 부끄러움이 사라진다. 책임감도 사라진다.
양심 없는 정치인, 기업인, 일반인이 사회와 나라를 망치게 한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생각하고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말이다.
생각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움을 알리 없다. 짐승은 겁을 낼지언정 부끄러움을 알지는 못한다. 짐승 같은 아니 그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이 보이는 세상이다.
수오지심을 회복하자. 부끄러움을 회복하자. 그래야 나라가 살고 사회가 살고 가정이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