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살 것인가?

어디에서 살 것인가? 어디에서 살아야 좋을까?

 

"나 살아갈 곳, 어디를 택할까? 어진 사람들 있는 곳이 좋겠지. 난초 있는 방에선 향기 스미고, 생선가게 있으면 악취 배는 법이니."

목은 이색 선생의 시라 한다.

 

향 싼 종이에선 향내 나고 생선 꿴 줄에선 생선 냄새난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은 불교 법구비유경에 나오는 부처의 말이라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현대의 사람들은 '주거 환경'을 본다. 그러나 옛 성현들에게 어디에 살 것인가라는 문제는 '누구와 살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아무리 주건 환경이 좋은 강남의 고층 아파트라 해도 주변에 같이 사는 이웃들이 도둑놈에 강도들이라면 그 생활이 행복할리 없다.

 

반대로 아무리 시골 촌구석이라 해도 주변 사람들이 성인군자라면 나의 생활도 덩달아 즐거워지지 않겠는가?

 

하기야 옛날에는 한양이나 시골이나 환경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문명의 발달로 환경의 차이가 크다. 그래서 더 좋은 사람들보다는 더 좋은 동네를 찾게 된 것이리라.

 

 

 

 

더 좋은 환경을 찾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요즘은 더 좋은 환경만 따질 뿐, 더 좋은 관계는 생각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핵가족을 넘어 일인 가구의 시대에 접어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일인가구의 증가는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혼자 생활해도 충분한 시대이니 굳이 관계를 엮으며 살 필요가 없다. 가게 주인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으니 이제 다른 곳을 찾아야겠다는 인터넷 글이 있었다 한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는 것도 싫고 그저 혼자 있는 것이 편한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세상이니 누구와 살 것인가 보다는 어디에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결혼율과 출산율도 떨어지는 것일까?

 

그러나 사람이 어찌 혼자 살 수 있을까? 관계하는 사람이 적을 수는 있어도 완전히 혼자 살 수는 없다. 그 외로움을 어찌 견디겠는가? 결국은 사람을 찾게 되어 있다.

 

 

 

 

일인 가구의 시대가 조금 더 지나면 다시 관계를 맺으려 하는 시대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 시대가 되기까지 세상이 너무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기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사회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상처가 너무 크게 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할 뿐이다'라는 황동규 시인의 시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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