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 가셨을 때 미친 사람을 고쳐 주신 이야기다. 이 사람이 얼마나 미쳤는지 쇠사슬로 묶어도 그걸 끊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걸 예수님이 고쳐주셨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 과정에 돼지떼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돼지떼가 몰살당할까 봐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 보고 떠나 달라고 했다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자기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시 그 지방 인근에는 대규모의 로마 군대가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거라사 사람들은 그 로마 부대에 돼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으리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측한다. 그러니 돼지가 죽는다는 것은 자기들의 생계가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예수님 보고 자기들 지역을 떠나가 달라고 요청했을 수 있다.
이 구절을 읽다가 문득 지금 내가 가진 현재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생계 문제로 예수님을 거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과연 거라사 사람들처럼 행하지 않을 것인가?
교인들은 당연히 그럼에도 자신은 예수님을 따를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고난이 닥쳐왔을 때 그걸 이기지 못하고 종교를 떠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솔직히 내가 그 대열에 끼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지 못한다.
다만 그런 상황에 있지 않은 현재에 감사할 뿐이다. 어쩌면 이런 현재에 감사가 쌓여야 그런 고난에 마주했을 때 그걸 이기는 힘이 생기는 것일 수 있다.
현재에 감사한다는 것은 지금 많은 걸 가졌기에 하는 게 아니라 적게 가져도 감사해한다는 것이기에, 지금보다 더한 고난이 왔을 때 그것조차 감사하는 감사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결국 처한 상황이나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마음밭이 문제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