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이미 징계가 아니다.
그것은 보복이다.
- 몽테뉴 -
몽테뉴의 말이다.
부모나 교사가 자녀 또는 학생들을 야단치거나 체벌할 때 그것이 과연 아이의 미래를 위한 징계인지 아니면 그저 화가 나서 자기를 제어하지 못하는 분노인가?
왜 야단을 치고 체벌을 하는가?
부모의, 선생의 말을 안 들어서 야단을 맞고 체벌을 받는다.
즉 부모나 교사 입장에서는 결국 자기 말을 안 들었기에 야단을 치고 체벌을 하는 것이다.
아이가 안 들으려 하는 말은 대부분 아이에게 좋은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러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재미가 없고 어른의 일방적인 요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냥 따라 하지만 자라면서 점점 말에 순종을 하지 않게 된다.
이때 진심으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라면 때리지 않는다. 그저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릴 뿐이다.
그러나 아이의 미래보다 자기 체면을 걱정하는 사람은 야단치고 체벌하게 된다. 가기 말을 안 듣는데서 안타까움보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그게 화가 나서 소리치고 때리게 된다.
그건 징계가 아니고 보복이다. 정말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야단치고 체벌한다면 그것은 징계다.
그러나 자기 체면이 손상당해서, 자존심이 상해서 야단치고 체벌하는 것은 보복이다. 자기감정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한 보복일 뿐이다.
사랑은 그저 보복의 합리화를 위한 단어로 전락하고 만다. 수 백 년 전의 인물인 몽테뉴는 이점을 정확히 짚었다. 징계 즉 사랑이 아니라 보복이라고.
우리는 얼마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보복을 행하고 있는가? 좀 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생각해 봐도 사랑만이 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