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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왈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지자불혹>

공자의 가르침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좋은 판단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판단력이 있으니 미혹되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 실수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은
좋은 판단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판단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욕심이 판단을 흐리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투명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철학자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자불우>
또 말합니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고.
당연한 말입니다.
어진 사람은 자기 이익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돕는 사람이 어진 사람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걱정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과는 상관없이 근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가족 중 누가 아프거나 자신의 사업이 망하거나 할 때입니다.
이런 경우 어진 사람이라 해도 근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공자가 그런 경우를 몰랐을 리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어진 사람은 근심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결국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두었다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유학에서는 천명이라는 말은 해도
숙명이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운명을 받아들이기 싫을 때 숙명이라 합니다.
그러나 받아들일 마음밭이 되면 천명이라 합니다.

결국 어진 사람은 천명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숙명이 아닌 천명을 인정할 때에
근심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용자불구>
그리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이 당연한 말을 공자가 왜 했을까요?

이 또한 천명을 인정하기 때문 아닐까요?
천명을 인정하지 못하면
자기에게 닥친 운명이나 숙명을 거부하고 싶어 집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받아들인다고 굴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새롭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출근하기 싫으면
계속 다녀야 하는 현실과
다니기 싫은 마음이 싸우게 됩니다.
이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명을 인정하면 마음이 세워집니다.
일단 현실을 인정하고 회사 출근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면 일을 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좋은 판단의 기준은 천명입니다.
천명을 알아가는 것이 공부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양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경입니다.

그러나... 뭔가 고매한 사상 같긴 한데...
내 삶에 적용은 참 힘듭니다.
그것이 유학의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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