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더 나아지길 바라는 상황에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강해지고 상황에 알맞도록 자신을 훈련하기보다는, 더욱 강해 '보이도록' 훈련합니다."
"열등감은 눈 앞의 문제에 대해 사람이 알맞게 적응하지 못했거나 준비되어 있지 못했을 때 나타납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미치는 영역을 제한하려 들고, 성공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실패를 회피하는 쪽에 더욱 기울어져, 어려움 앞에서 망설이며 서 있거나 심지어는 물러서는 모습마저 보입니다."
"난관을 앞에 둔 채 달아나려는 태도의 가장 철저한 표현은 자살입니다."
"자살은 늘 그 죽음의 책임을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떠넘깁니다."
이상은 열등감에 대한 아들러의 말입니다.
아들러는 열등감이란 눈 앞의 문제에 대해 알맞게 적응하지 못했거나 준비되어 있지 못할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말과 같을 겁니다.
문제를 마주하기보다 회피하게 되면 점점 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위축됩니다. 위축되면 자연히 열등감이 생기게 됩니다. 위축되고 그로 인해 열등감이 생기게 되면 다음에 비슷한 문제를 만날 때도 역시 피하게 됩니다.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스캇 펙 박사는 비슷한 말을 합니다. 문제를 피할 때 생기는 문제가 노이로제라고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떤 문제는 정말 내가 어찌해 보기가 버거울 수 있습니다. 버겁다고 도망가게 되면 열등감이 생기고 노이로제가 생기게 됩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야 합니다. 그걸 못할 때 책임전가가 일어납니다. 책임전가는 회피의 일종입니다.
그래서 아들러는 가장 큰 책임전가가 바로 자살이라고 합니다. 모든 자살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책임전가, 회피의 극단이 자살이라는 말에 수긍이 갑니다.
부딪혀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부딪히는 건 용기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용기라는 말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용기는 패싸움을 할 때 앞에 나서는 차원이 아닙니다. 더 큰 용기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오늘도 밖으로 나가면 나를 속이는 사람, 공격하는 사람, 헐뜯는 사람 등등 여러 종류의 인간들을 마주칠 거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 휘둘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 그런 일은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이성을 생각하고 그에 따르는 생활태도를 지닐 때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 돼, 인생의 문제에 직면해서는 당당히 맞설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도 여러 일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런 사람, 그런 문제에 직면하여 당당히 맞서며 살아야 합니다.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내가 해결해야 합니다. 열등감, 문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그래야 없앨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용기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