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 가셨을 때 미친 사람을 고쳐 주신 이야기다. 이 사람이 얼마나 미쳤는지 쇠사슬로 묶어도 그걸 끊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걸 예수님이 고쳐주셨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 과정에 돼지떼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돼지떼가 몰살당할까 봐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 보고 떠나 달라고 했다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자기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시 그 지방 인근에는 대규모의 로마 군대가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거라사 사람들은 그 로마 부대에 돼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으리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측한다. 그러니 돼지가 죽는다는 것은 자기들의 생계가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예수님 보고 자기들 ..
아시안컵 4강전을 보고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낫다. 매우 아쉬운 결과다. 우리가 한 두수 아래라 보았던 요르단에게 패하여 아시안컵 결승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질 수는 있다. 우리도 브라질, 스페인을 이긴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어제 경기를 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났던 건 우리가 일방적으로 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무슨무슨 참사라 하여 하위 팀에게 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가 내용적으로는 우세했거나 비슷했는데 운이 따르지 않아 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우리보다 하위팀을 상대로 힘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패한 적은 없었다. 고전은 했지만 일방적으로 진 적은 내가 아는 한 없었다. 또 하나는 우리 팀의 세계적인 선수 몇 명은 죽어라 뛰는데 그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
절대적 혹은 상대적 가치 기준? 현시대는 상대적 가치 기준의 시대다. 어떤 일에서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1800년대 후반 산업 발달의 영향으로 과거의 가치 기준이 아닌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 기준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이른바 모더니즘이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 대전으로 모더니즘에 대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꾸는 모더니즘이 아닌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이 건설한다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발전하게 됐다. 모든 기준을 없애고 제로에서 시작하니 어떤 의견이든 나름의 타당성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현대 사상은 과거엔 맞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안 맞고, 여기선 맞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틀릴..
요즘 세상이 여러모로 시끄럽습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는 누가 맞고 틀리고가 혼동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맞고 틀리는지를 분간하는 좋은 글이 있어 옮겨 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막된 세상 세상이 어찌하여 이렇게 가고 있을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세상이 오늘입니다. 공자의 유학사상을 확대하여 발전시킨 사람은 맹자였습니다. 『맹자(孟子)』라는 책을 통해 공자의 사상과 철학을 이어받아 동양의 원본 유학사상을 창안한 아성(亞聖)이 바로 맹자였습니다. 공자가 성인(聖人)인 이상, 맹자는 성인에 버금가는 성인이라고 해서 아성이라고 호칭하니, 성인과 같은 분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경전을 읽어보면 맹자처럼 부끄러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던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동양철학 핵심의 하..
좋은 글이 있어 옮겨 본다. 요즘 이십 대 초중반 여성의 패션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네댓 살 간격으로 패션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스무 살 전후 여성들, 이른바 알파세대는 배꼽을 드러내는 짧은 상의가 도드라진다. 이십 대 중반, 즉 Z세대는 상의를 모아 바지 안에 넣어 허리를 잘록하게 하고 다닌다. 내가 제대로 묘사했는지 모르겠으나, 거리를 걷다 보면 이 차이가 확연하다. 알파세대는 차별화에 성공했다. 젊은이들의 버릇없음 기성세대의 기득권에 대해 말들이 많다.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자. 어떤 세대도 스스로 기득권을 내놓았던 적이 없다. 기득권의 성채를 부수고 권리의 일정 부분을 쟁취하는 일은 항상 뒷세대의 몫이었다. 이 점에서..
맹자에 보면 사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네 가지 단서란 뜻인 거 같은데 이 네 가지가 인간의 착한 본성을 이룬다는 말이다. 네 가지 인간의 본성은 익히 들어 본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측은지심이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양보하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인의예지로 본다면 여기서 양보하는 마음은 '예'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마음은 '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에 해당할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인간이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고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다. 이 덕목이 없다면 우리의 세상은 혼탁해지고 살만하지 못한 세상이 될 것이다. 양보하는 마음이 없다면 서로 새치기하고 사재기를 하고 지하철을 타려고 아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