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배우고 대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입니다. 이 글이 논어 첫머리에 있는 글입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 글이 논어 전체를 흐르는 가장 중심이 되는 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 첫 글귀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이 한 구절에 성경 전체의 기둥이 담겨 있습니다. 한동대 초대 총장을 역임하신 김영길 박사님은 이 한 구절을 읽고서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첫 구절이 그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논어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 또한 그렇습니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은 공자의 인생을 돌아보는 글이고
공자의 깨달음을 나타낸 말이고 인생 달관의 경지에서 한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자는 배우고 대대로 익히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 했습니다.
그냥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희열이라고 할 때의 열자를 써서 즐거움 중에서도 더욱 즐거운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기쁨 중에서 가장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공자는 왜 배우고 익히는 것을 가장 큰 기쁨이라 했을까요?
그건 공자의 인생과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뜻을 펴지 못한 공자
공자는 자신의 뜻을 펴려고 천하를 주유했지만 결국 정치인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는 춘추시대라 대륙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서로 싸우던 시대였습니다. 그 나라들은 제후국으로 중앙정부인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서로 싸워도 제후국들은 처자를 건드리진 않았는데 춘추시대가 되면서 천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지 서로 자기가 천자가 되겠다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니 죄 없는 백성들만 죽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인'의 정치를 펴고 싶었지만 공자를 정치가로 써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공자는 나이만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살면서 제자를 기르는 일에만 신경을 쓰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만큼 지나간 인생에 회한도 있었을 것이고 아쉬움도 많았을 겁니다.
전쟁으로 온 천하의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걸 지켜보아야만 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자신이 주장하는 '인'의 정치만 한다면 싸울 일도 없고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죽지 않아도 될 백성들이 죽어 나가는 걸 막지 못했으니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은 실패를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세상을 위한 공부
이러한 상황에서 공자도 어찌할 수 없는 시대를 뒤로 하고 노년엔 제자 양성에만 주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배우고 삶에 적용하는 게 가장 좋은 일이라는 것이죠. 오죽했으면 이럴게 말했을까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달관이 묻어 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공자급의 인물이 자포자기로 말을 뱉을리가요. 그럴 거면 제자들도 양성하지 않았겠지요. 이건 포기가 아니라 달관일 겁니다. 자기 이득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게 아니라 제자들에게 기대하려는 것이죠. 그래서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걸 적용하는 것까지 해야 진짜 기쁨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학이로 끝나지 않고 시습지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배우는 대로 익혀야하는 겁니다. 공자는 그럴 주문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요즘 우리의 교육은 어떨까요? 배우기만 하던가, 실생활에 적용만 하던가 둘 중 하나같습니다.
실생활에 적용이 안 되는 자기만족의 공부가 있고, 세상에 이롭게 적용하려는 것이 아닌 자기 이득을 위한 적용만 있습니다. 공자의 적용(습)은 천하를 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위한 적용이 아니면 쓸모없는 공부입니다. 지금의 교육이 그렇습니다. 자기 성공을 위한 적용만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학이시습지는 세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서울과 부산의 시장이 바뀌었습니다. 이분들도 학이시습지 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갔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학이시습지가 세상을 위한 학이시습지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