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테마트 다녀오다

지난 토요일 집사람과 함께 롯데마트에 다녀왔다. 거의 주말마다 집 근처 롯데마트에 다녀오고 있긴 한데 이번엔 풍성한 식품들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마포구 염리동. 가 본지 오래라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어릴 적의 염리동은 매우 빈촌이었다. 근처엔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돌산이었던 일명 개바위산이 있었는데 조그만 산이라 동네 아이들과 자주 올라가서 놀곤 했었다. 개바위산 주변으로 한쪽에 염리동이 있었고 다른 쪽으로는 또 다른 동네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주변의 동네들 모두 돌산 이미지만큼이나 가난한 자들의 마을이었다.

 

어느 날 동네에 리어카로 생선을 파는 생선장수가 왔다. 젊은 청년인듯한 생선 장수는 동네 조그만 빈터에 리어카를 세우고 생선을 사라고 동네 사람들에게 힘차게 외치고 있었다. 가난한 동네라 생선 먹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각 집마다 일 년에 몇 번씩은 사 먹었을 터, 이제 먹을 차례가 된 집들과 그냥 입맛만 다시는 동네 사람들이 리어카 주변에 모여들어 생선을 구경하고 있었다.

 

 

일부는 생선 장수와 흥정을 하고 일부는 입맛만 다시다 그냥 발길을 돌리고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사람이 구경을 오고... 그러다 일이 터졌다. 어느 아주머니가 입맛만 다시다 그냥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생선 장수가 아주머니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는 게 무어냐며 보자고 했다. 아주머니는 품 안에 신문지로 감싼 무언가를 감추듯이 양손으로 꼭 안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당황하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고, 생선 장수는 보여 달라고 하고... 그렇게 옥신각신하는데 아주머니 표정이 점점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젊은 생선장수가 소리쳤다. 생선 훔친 거 아니냐고. 내가 다 봤다고. 

 

 

결국 아주머니는 두 손을 싹싹 빌며 젊은 생선장수에게 용서를 구했다. 이거 팔아 얼마나 남는다고 그걸 훔쳐 가냐고 씩씩대는 생선 장수에게 아주머니는 남편이 생선을 좋아하는데 돈이 없어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고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그러나 생선장수는 화가 안 풀린 듯 거친 말을 쏟아냈다. 한동안 그러더니 그냥 아주머니를 보내주었다. 하긴 어쩌랴. 휴대폰은커녕 집집마다 전화도 드문 시대였으니 경찰을 부를 수도 없고.. 생선 한 마리 훔쳤다고 경찰서까지 같이 가지니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너무 심하다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냥 보내주었을 거다.

 

황망히 아주머니가 가 버린 뒤 젊은 생선장수는 자신도 기분이 언짢은 듯 찡그린 표정만 짓고는 생선 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더니 한참 후에 말없이 리어카를 끌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생선장수도 아주머니를 잡은 게 기분은 좋지 않았던 듯싶다. 그렇겠지. 그 가난한 시대, 가난한 동네에서 생선 한 마리 때문에 언성을 높였으니... 자신이 매몰차게 차 버린 그 아주머니의 가난에 화도 나고 미안도 했을 것이고, 자신의 그런 매몰찬 모습에 스스로 실망도 했을 것이고, 좋지 못한 일을 겪은 그 자체에 또한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주말에 롯데마트에서 집사람과 함께 장을 보면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 올랐다. 왜 떠올랐을까? 굳이 떠 오르지 않아도 되는데... 가난이 뭐 좋은 거라고 그런 기억이 떠 올랐나.

 

마트에는 이런저런 물품이 코너마다 가득 놓여있었다. 생선 코너에도 여러 종류의 생선들이 가득했다. 지금은 이렇게 생선이 풍부한데 왜 그때는 생선 한번 먹기가 그리도 힘들었을까? 지금은 채소가 이리도 풍부한데 왜 그때는 시장터에서 시래기라도 주워서 먹으려 했던가? 지금은 과자가 저리도 많은데 그때는 왜 그리 라면땅 하나 먹기가 힘들었을까?

 

롯데마트에 풍성하게 진열된 식품들을 보니 참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고, 많이 살기 좋아졌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다만, 풍성해진 식품들 만큼이나 행복도 풍성해졌으면 좋겠는데... 그건 비례하는 게 아닌가 보다. 그게 비례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비례하지 않더라도 배고프지 않은 거라도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 감사해야 하는데 이젠 익숙해져서 감사도 잘 모른다. 감사를 잘 모를 정도로 익숙해졌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을 겪고 있다고 한다. 어서 팬데믹 사태가 끝나고 롯데마트에 다시 시식 코너가 열리길. 그래서 배고픈 사람들이 시식코너에서나마 먹을 수 있게 되길... 무엇보다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이 없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길. 언젠간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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