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의 경지

난중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뛰어난 장수였는지는 책의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중에 문득 생각나는 장면이 있네요.

 

 

부하 장수들과 간단하게 술을 한잔 걸치신 날인지 아니면 그냥 자다 깨신 것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하여간 새벽에 장군이 깨어나서 뜬금없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적병이 기습을 할지 모르니 바다에 경계선을 띄우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날은 달이 밝아 공격을 해 온다면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어느 쪽이건 몰래 기습을 한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공격해 오지 않을 것이라 모두 생각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래도 장군의 지시이니 몇 척의 함선이 바다로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왜선들이 몰래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쪽의 함선에서 대응을 하니 왜선들은 혼비백산 도망하였다고 합니다.

 

 

모두들 이런 날씨에 공격은 당연히 없다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적들도 그리 생각했을 겁니다. 그들은 바로 그런 허점을 이용해서 공격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왜적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너무나 상식적이라 모두가 안심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습니다. 장군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깨어 경계선을 바다로 보냈습니다. 모두가 뜬금없는 명령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 왜적이 기습을 하려 했던 겁니다.

 

이게 바로 달인의 경지가 아닐까요? 아무도 생각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가지만 그 전혀 눈에 띄는 것 하나 없는 순간에 볼 수 있는 눈. 이순신 장군은 정말 달인이셨습니다. 대체 그 수준이 얼마나 높길래 잠에서 깨어 던진 한 마디가 들어맞았을까요? 보통 사람, 보통 수준으로는 다가설 수 없는 경지 같습니다.

 

 

요즘 세상이 또 시끄럽습니다. 하기야 5천만이 모인 곳이니 어떻게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있겠습니까? 한강변 대학생 사건, 정치권의 다툼, 대권을 향한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들, 이웃 나라들의 어이없는 행태들...

 

이런 어지럽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남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중요한 그것을 보고 나라를 조용히 안정되게 정리할 달인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그런 사람이 언제 나타날지.. 이러다가 우리 국민들만 기다림의 달인이 될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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