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과일인 선악과를 먹었다. 그리고 그 벌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먼저 하와가 뱀의 꾀에 넘어가 먹고 아담에게 주어 아담도 먹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동산에 두고선 아담과 하와에겐 먹지 말라고 하셨다.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었을까? 왜 선악과를 동산에 두시고 먹지 말라고 하신 걸까?
보통 이러한 질문들을 한다. 인간이 먹을 걸 뻔히 아셨으면서 왜 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이성으로 어찌 알겠는가? 3차원에 살고 있는 인간은 4차원, 5차원을 이해할 수 없다. 추측할 뿐이다. 하물며 하나님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왜 하나님이 그러셨을까라는 질문을 잘못된 질문이다. 그 질문보다는 아담과 하와가 왜 선악과를 먹었을까라는 질문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왜 그들은 선악과를 먹었을까? 뱀에 꾀여서?
물론 뱀이 꾀어낸 것이 맞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이미 먹고 싶다는 마음이나 뭔가 의심이 있었기에 뱀의 꼬임에 넘어가게 된 것은 아닐까? 그게 맞다면 인간의 마음속에 있던 그 의심은 또는 그 어떤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감히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본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에 살면서 자신들을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다만 인간의 몸으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들었기에 하나님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음성만 들을 수 있었을 뿐 직접 보지는 멋했던 것 같다.
음성을 들으나 보지는 못하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졌을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을 알고 싶었고 직접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왜 그러고 싶지 않겠나? 누구라도 직접 만나보고 싶었을 것이다. 듣기는 듣는데 볼 수 없는 존재, 분명 있기는 한데 만날 수 없는 존재.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즉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뱀이 나타나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고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을 알고 싶은데 선악과를 먹으면 아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레벨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게 웬 횡재인가? 아마 하와의 눈이 뻔쩍였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알고 싶은 바람이 뱀의 꾐에 넘어가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좋은 의도도 나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 생각했어야 했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하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
아무리 자기가 보기에 좋은 일 같아도 실은 나쁜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는 순수하게 하나님을 알고 싶었던 게 아닐 수 있다. 탐심이 섞여 있었기에 뱀에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는 탐심에 있었다. 순수함을 잃을 때가 곧 탐심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을 때다.
순수함을 유지하려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순수함을 잃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 과일인 선악과를 먹은 이후 순수함은 사라졌다. 그보다는 내 안에 꽈리를 틀고 앉아 있는 탐심을 하나씩 보고 제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