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선악과 이야기
성경 창세기에 보면 선악과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창세기 선악과 이야기를 통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순종
이 이야기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대가를 이야기할 때 종종 인용됩니다. 비록 선악과가 에덴동산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셨으니 순종하여 먹지 말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하기 싫은 것이라로 해야만 한다면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선악과가 무엇이길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먹지 말라고 하신 걸까요?
선악의 판단
선악과는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입니다. 그걸 먹으면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게 하나 봅니다. 이건 좋은 일 아닐까요? 선악을 알아야 피할 건 피하고 취할 건 취할 테니 말이죠.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몰라서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있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명확히 서있으면 나와 타인의 행동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고 지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런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분쟁은 판단에서
제 생각으로는 선악을 인간이 판단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선악의 기준이 있어야 우리는 서로의 행동에 대해 판단하고 지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심지어 살인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가진 인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테러가 일어나고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것일 겁니다. 분쟁은 각기 다른 판단에서 생깁니다.
즉 선악을 인간이 판단하는 순간 인간 사회의 다툼과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판단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조그만 사안에 대해서도 바른 판단을 내린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선악을 판단하는 일이야 어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이런 어렵고 중요한 일을 인간들이 그것도 인간 각자가 정의 내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세계입니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전쟁이 일어나고, 집단이 집단을 대적하여 분쟁이 일어납니다. 가족 중에서도 분쟁이 있습니다. 이게 다 각자의 판단이 다른 데서 기인하는 일이 아닐까요? 판단이란 결국 선악, 좋고 나쁨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고 이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니 분쟁이 있을 수밖에요.
선악과 사건 그 이후
하나님은 이걸 아시고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악 즉, 판단을 하는 사람은 타인을 정죄하기 쉽습니다. 판단에는 항상 정죄가 따라붙게 됩니다. 그래서 원한이 생기고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사랑은 희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사랑하라고 외치신 걸 겁니다. 이미 선악과를 먹은 인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해법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이제는 판단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판단(선악을 구분)을 하는 것은 이렇게 매우 위험한 일임을 알고 판단을 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판단을 했다 해도 그로 인해 타인을 정죄하지 않도록, 비판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창세기 선악과 이야기를 통해 판단의 어려움과 사랑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