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한 배움으로는 부분적인 문제밖에 해결하지 못한다. 혼신의 힘을 다한 배움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스캇 펙 목사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책에 있는 구절입니다. 정신과 의사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신 말입니다. 그런 만큼 매우 실제적인 조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캇 펙 박사님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약한 배움으로는 미약한 결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운 좋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인생을 요행에 걸 수는 없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아니 혼신의 힘을 다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를 바라는 요행 심리가 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동양의 격물치지가 생각납니다. 그 근본까지 파고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또는 어떤 일을 맡았을 때 그 근본까지 들어가도록 파고 또 파야합니다. 그래야 해결책이 보이고 업무에 발전을 바랄 수 있습니다. 그저 안일한 자세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스캇 펙 박사님의 글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삶의 승패는 그 문제를 얼마나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영적으로 정신적인 성장은 오직 문제에 직면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삶의 승패는 결국 마주친 문제를 얼마나 해결해 냈느냐로 판가름 납니다. 인간으로서의 성장은 문제를 풀어가면서 얻어집니다. 평온한 삶을 살면서도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또는 깊은 종교활동을 통해 영적 성장이 가능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문제와 씨름하면서 성장합니다.
물론 제대로 성장해야 합니다. 문제를 나쁜 방식으로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인맥과 집안의 힘을 이용해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더욱 오만해지고 더욱 죄를 짓고 있을 뿐입니다. 바른 방식으로 해결해 가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좋고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고통을 두려워하고, 가능한 한 문제를 피하려고 한다. 때로는 문제를 질질 끌면서 저절로 없어지기를 바란다.
스캇 펙 박사의 이 말도 역시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정면으로 맞서서 문제를 돌파한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자주 만나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있던 문제들은 인생의 길목에서 마주치는 사나운 맹수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맹수를 만나게 되면 주로 돌아서 가려했습니다.
맹수를 달랠 먹이를 주려고 하지 않았고, 맹수를 묶을 목줄을 걸려는 시도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돌아서 가기 급급했습니다. 혹여나 나나 맹수가 다치지 않을까.. 둘 다 고귀한 생명인데 어느 한 생명이라도 다치면 안 되기에.. 그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까지 다치면 안 되기에.. 이런 생각으로 돌아서 가는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 간 결과는 결국 모두의 아픔으로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더 큰 피해였습니다. 방법을 궁리하여 맹수와 맞서야 했습니다.
칼 융은 이것을 "노이로제(신경증)란 항상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가로 표현했다.
참으로 탁월한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노이로제는 고통을 회피한 결과라고 합니다. 마주해야 할 고통을 피해 간다고 문제와 그에 따르는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계속 자신을 따라다니며 고통을 줍니다. 반복되는 그러한 고통으로 인해 결국 노이로제가 생깁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수긍이 됩니다.
올바른 삶의 자세는 이러한 문제, 고통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 혼신의 힘을 다해 해결해야 합니다. 그게 삶의 자세이고 책임감이라 생각됩니다. 스캇 펙 박사가 조언하는 바른 삶의 자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인생 길목을 막고 있는 문제에 맞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인생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올바른 삶의 자세입니다.